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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stion & Answer

산소앞의 돌 제거와 관련하여 질문드립니다

윤정호 2022.08.25 1075
Q.

 

교수님의 답변 내용 잘 보고 있습니다.

너무도  박식하신 글에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저의 가족 선산에 성묘할때마다 절하는 부분 바로 2m 정도 옆에 큰 돌이 2개나 박혀 있어  2년전에 가족회의 끝에 

풍수하는 분을 모셔서 잘게 부셔서 빼내어 버렸습니다.( 그분이 포크레인으로 빼내면 안된다고 하여 착암기로 부셔서 빼냈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건설시공과 시행업)이 부도가 나고 아버지의 바로 아래 동생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작은 아버지는 평소 건강하셨고 건강검진을  매년 받으실 정도로 건강에 신경쓰셔서 지병도 없었고 특히  심장병은  전혀 없었슴니다.

 

 

혹시  큰 돌 2개(넓쩍하고 각각 직경이 1.2m와 1.7m 정도 됩니다)를 제거한 것과 관련이 있었는지 아버지도 괴로워 하고 있어서 질문드립니다.

저도 2년전에는 없었던 올초 건강검진에서 대장에 용종이 5개나 발견되어 짤라냈는데 이것도 관련이 있는지요?

아버지도 사업의 재기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는 있지만  동생과 동생가족에  대한 죄책감이 엄청나게 크십니다.

 

 

혹시 돌의 제거와 저희 집안의 우환과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관련이 있다면  복구는 가능할 런지요?

 

 

교수님의 고견 부탁드립니다.

 

RE :

귀하의 질문에 답글드립니다.

 

 

풍수지리학에서 묘소나 묘소 주변에 있는 암석에 대한 길흉여부에 대한 판단은 명료하게 구분됩니다.

먼저 위치와 무관하게 와석이나 瑞氣(서기)어린 색은 길석, 흉하게 생긴 입석,청태가 낀 암석,청색,균열이 간 암석등을 흉석으로 간주합니다.

 

* 주변 砂格(사격)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입수나 두뇌,십자룡맥이 있는 곳이나 선익,혈판의 암석의 길흉여부도 더없이 중요함을 아셔야만 합니다.

 

 

 

귀하께서 제거하셨다는 전순(또는 인목,순전)이나 선익쪽의 와석은 정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상당한 길석으로 갅 합니다.

soft bank의 손정의 (일본명 손 마사요시)의 증조부 윗대의 묘소나 2대천하지지로 간주하는 남연군(대원군의 아버지이며, 영조의 증손자)의 묘소등 

상당히 많은 재벌가나 고위관직의 조상묘소에서는 제법 큰 와석이 많이 발견되어 후손 발복의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  전순의 와석을 비롯한 길석의 존재는 강력한 신념을 지닌 후손의 탄생으로 大富貴之地(대부귀지지)로의 발복을  예고하기도 합니다.

 

 

전순은 말자의 길흉을 가늠하는 四相(사상)으로 간주하는 협의의 의미가 있고, 전순에 돌(臥石:와석)이 있으면 말자(막내)가 세도하며

선익에 돌(고석)이 있으면 速發(속발)하게 되나, 그 형태를 보지않고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전에 말씀드렸듯이 전순이 없으면 비혈이 되고, 급락되면 3-5대에 가서는 후손이 없어 절자(후손이 끊김)하게 됩니다.

더구나 전순앞의 구배(slope,gradient)가 20-30%가 넘어기면 후손들은 잦은 흉사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됩니다.

 

 

 

물론 순구첨지분합의 조합도 중요하고 입수변화 여부, 순,역경사 ,용호환포 여부,외에도 용,혈,사,수,향도 더없이 중요한 선택이겠지만  묘소내부의 길석을  제거하신 것이  엄청난  흉사를 자초하신 것이며, 문제는 지속적인 흉사가 반복될 것이라는 점이 본인의 견해입니다.

 

 

 능지처사처럼 착암기로 臥石(와석)을 조각내어버림도 끔찍하기조차 합니다.

(묘소나 묘역에 손댈 때에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임해야만 합니다.)

 

 

특히 전순은 인체의 장기로는 심장과 소장을 관장하므로 작은 아버지의 善終(선종)과도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비보나 염승은 가능해 보이나, 生氣聚於穴(생기취어혈)의 명당도 정확한 근거없이 잘못 손을 대는 경우 패가지지가 되어 회복불가능한 경우도

매우 많다는 사실에 유념하셔야만 합니다, 아무리 九遷十葬(구천십장)이 가능하다 하여도 조선시대 3대 예언서의 하나인  '격암유록'의 저자인 남사고도 명당을 구하지 못하여 대성통곡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마음에 새기시고 적덕한 풍수사를 만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는 것입니다.

 

 

충분한 답변이 되지 못하셨다면 재질문을 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